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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백만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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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트는(Aguste Comte 1798~1857) 철학을 실용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리려고 했다. 그는 사회가 신화적 단계를 거쳐 형이상학적 단계에 도달하고 최종적으로는 실증적 단계에 도달한다고 보았다. 콩트의 사회학은 생물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것은 유기체에 대한 생물학적 연구를 사회로 확대시킨 것이다. 사회는 하나의 생물처럼 하나의 유기체적인 조직이었다.
![]()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은 콩트의 영향을 받아 실증적 공리주의를 세운 사람이다. 공리주의는 사실 벤담에 의해 성립되었는데 벤담은 알다시피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밀은 행복의 양보다 ‘질’을 중요시 했다.
![]() 이러나 저러나 공리주의의 가장 큰 취약점은 ‘결과주의 윤리’라는 데 있다. 행위의 결과만 주목하는 것이다. 그 과정이야 어떻든. 수단이야 어떻든 목적에 이르면 된다. 남의 등을 치든 뒤통수를 치든 내가 부자 되면 그만이다.
하지만 키에르케고르(1813~1855)는 성공이니 행복이니 따위의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사유를 거부했다. 그에겐 주체의 실존과 주체적 결단이 중요했다.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신의 요구 앞에서 아브라함은 객관성을 유지할 수 없다. 주체적 결단만이 문제가 되는 상황이다. 우리는 매사에 결정하고 판단해야 한다.
![]() 요즘 젊은 사람들은 선택하거나 결정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무엇인가 자신의 입장을 정립하고 표명하는 일에 서툰 것 같다. 그런 건 골치 아프고 소위 ‘짜증나는’ 일이다. 그들은 주어진 길을 걸으려고 하는 것 같다. 안전한 길. 스펙 쌓아서 좋은 직장을 얻는 길. 그곳에는 더 이상 사유할 것도 없고 골치 아플 것도 없다. 무릉도원인 셈.
이런 사람들의 세계를 들여다 볼까. 요새 어벤져슨가 하는 헐리웃 영화가 유행인가 보다. 수백만이 봤단다. 조카들 땜에 어쩔 수 없이 봤는데 뭐 독수리 오형제가 나와서 지구를 지킨다는 얘기다. 대체 이걸 왜 오백만인가 육백만인가 하는 사람들이 보는 건지. 다 아이들은 아닐테고. 블로그에 ‘어른들의 유아화’에 대해 몇마디 썼더니 육백만에 속하는 사람들인지, 악성 댓글들을 달고 가신다. 최대다수가 그 영화를 보고 최대 행복한 모양이다. 6백만대 1로 싸워 이길 승산이 없어서 칩거중이다. 내가 행복한데 너가 무슨 상관이냐던가. 6백만 유기체에 대항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ㅠ 행복하다니 뭐,,,,아도르노는 친구보다 좋은 집과 차를 가지고 있으면 행복이냐고 반문한 적 있다. 현대인이 말하는 행복이란 기껏해야 이런 종류다. 멍 하니 티비보는 게 행복이라면 환쟝할 노릇이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그들 부모도 아니고...
물론 스펙 같은 거 쌓아 본적이 없어서 취직도 못하고 있는 루저는 그들이 아니고 나다. 하지만 뭐랄까.... 이거 또 잘못 말했다간 큰일날 것 같고,, 음,,난 그냥,,, 악당으로부터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다섯 살 때 이후로는 안하고 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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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 2012-05-25 10:56:34 2012-05-25 11: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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